Kosciuszko 2편 - 호주 최고봉, Mount Kosciuszko

2020. 9. 23. 22:08Trip

 

Blue Lake에서 나와 조금 더 가보기로 하고 오른쪽을 선택한 것은 본능이었다. 처음부터 장거리를 걸을 생각이 없었기에 물 한 통, 과자 두 개, 카메라만 들고 나선 길이었으나 Blue Lake에서 이미 판단 능력을 상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언덕만 넘으면 어떤 풍광이 펼쳐질까? 저기 저 코너만 돌면 근사할 것 같은데…!
변덕스러운 고지대의 날씨에 잠시 비가 내렸고 그 참에 앉아 들고 온 과자를 먹으며 정신을 차리고 나서 지금까지 온 거리와 앞으로 남은 거리를 비교 해 본 결과 그냥 이대로 나아가는 것이 이득이다 라는 자기 합리 화적인 결론을 내린 후 다시 본능에 충실하기로 했다. 

 

 

Kosciuszko 최고봉에 가까워 질수록 야영을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야영지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모습으로 자기가 맘에 드는 곳에 조그마한 텐트를 치고 식사 준비를 한다든지, 근처 웅덩이에서 시원하게 수영 같은 목욕을 즐기는 등 과하지 않으면서 자유스러운 모습이다. 물리적 자유를 만끽하는 대신 심리적 의무를 다 한다고나 할까, 쓰레기, 음주, 고성방가 등이 없다.
이 자유로운 영혼들을 지나 오른 Kosciuszko, 2,228m 호주 최고봉. 최고봉이라고는 하지만 한라산 중턱까지 올라가 본 예전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다지 큰 감흥은 없다. 어렵게 어렵게 올라가 쓰러지듯 주저앉아 발 밑을 내려다보는 정도는 되어야 큰 성취감이라든지 감흥이 있을 텐데 나 같은 저질 체력으로도 네발 아닌 두발로 걸어 올랐으니 싱거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확 트인 넓은 산 너머 산들의 향연은 볼만하다. 강원도에서 군생활 시절에 본 산 너머 산, 산, 산들의 모습이 일반 극장판이라면 이것은 아이맥스 수준, 한 컷의 이미지에 담기 어려운 이 감흥을 아쉬운대로 파노라마로 촬영을 하지 않은 것은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이제 정상을 찍었으니 반환점을 돌아 출발지로 돌아 가는 코스이다. 여기서부터는 Summit Walk 코스를 통해 출발지인 Charlotte Pass Boardwalk Lookout으로 돌아 가는데 Summit Walk은 난이도 최하 수준으로 자전거로도 이용이 가능하다. 처음부터 Kosciuszko 정상이 목적이었다면 Summit Walk를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지만 나는 Blue Lake를 목적으로 하였기에 반대편인 Main Range Track로 들어섰고 결과적으로 대략 20km 정도를 걸었다. 차에 도착한 것은 밤 8시경으로 물 한 통, 과자 두 개로 버틴 미친 하루였지만 Kosciuszko가 나에게 보여준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